나의 9월은 너의 3월
🔖 본능 이상의 것
폭설이 우리를 산장에 묶어두었다. 주인 없는 산장에서 보낸 이틀. 눈은 한시도 그치지 않았다. 산장이 눈에 파묻히지 않는 게 안도와 오해를 낳았다. 우리는 네 명이고 이틀 전에는 세 명이었다. 산장보다 좋은 곳을 찾으러 간 한 사람. 나빠져도 혼자가 좋다던 한 사람 있었다. 너희 말을 도저히 더 못 들어주겠다고, 차라리 눈 속으로 들어갔다. 모르는 두 사람은 언제부턴가 우리와 함께였다. 식량이 반에서 반으로 줄고 있었다. 산장은 아주 따뜻해서 지내는 동안 방한복을 벗고 있었다. 산장은 아주 넓어서 우리가 안 쓰는 방들이 수십 개가 넘었다. 먼지 샇인 빵을 먹으며 우리는 정도껏 쌓이는 눈을, 겨울이 지나고도 비참히 내리는 눈을 보았다. 장작이 떨어지자 의자 다리를 부러뜨렸고 의자 다리를 잃어버리자 소설을 넣었고 소설이 재가 되자 역사를 던졌고 역사가 사라지자 성경을 찢었다. 잡담이 아니라면 말을 아꼈다. 벽난로가 식고 우리는 세 명이 되었다. 따뜻해졌다. 빵 대신 빵가루 묻은 먼지를 먹었다. 우리를 떠난 그 사람이 더 잘 지낼 거란 생각이 들어서 슬프게 추웠다. 눈이 비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산장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미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얼어붙었다. 식량이 떨어지고 우리는 두 명이 되었다. 배가 불렀다. 여름이 분명했는데 우리는 산장에 묶여 있었다. 소모적인 대화가 계속되었다. 눈과 비가 절반씩 내리고 있었다. 춥고 배고팠지만 우리는 한 명이었다. 혼잣말을 하다 죽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우리에 관한 뉴스가 평생 실종으로 보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거의 모든 사랑
좋은 일이 있는 네게 꽃다발을 안겨준다 짧은 감정 이상의 의미로 포장된다 푸르고 깊은 향 노랗고 아무는 모양 이 꽃은 먹을 수도 있다 그 말을 듣고 너는 더욱
단 하나도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든다
가만히 두어도 보고만 있어도 된다 물을 주는 것도 물에 타는 것도 괜찮다 향을 품은 꽃은 모두 생화다 향은 향일 뿐 진실도 거짓도 무용하므로
오늘은 아름답다는 이런 고백도 가능하다
아무 일도 없는 내가 너의 주위에 있다 초에 붙은 불을 끌 때에야 말문이 열린다 기념으로 남긴 사진 안에
아주 뜨겁지도 정말 차갑지도 않은 것이 너의 품에 있다
밤은 고요하다
셀 수 있는 만큼의 행복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중얼거렸던 너라
이따금 좋아 보인다
이름과 생태를 너는 알고 싶어한다 나는
더는 구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누구도 구해낼 수 없으니
너를 보는 나는 우울하다
너무 많은 아름다움에 파묻혀 네가 보이지 않는다